2015년 3월 10일 화요일

내게 5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 하나님의교회,새언약 유월절

내게 5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 하나님의교회,새언약 유월절






패스티브닷컴에 나온 내게 남은 시간 5분이라는 글이다.
만약 나에게도 5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새언약 유월절을 제일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로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에게는 5분 보다 더 소중한 인생의 삶을 주셨다.
바로 주변의 이웃들,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언약 유월절을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새언약 유월절을 함께 지켜보자고 한마디의 말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시작해보련다.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서
영생의 축복이 있는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보자고 말이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한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사형수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모임에 가담해 활동하던 중 1849년, 이른바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체포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판결을 내렸다. 그해 12월 22일 사형이 집행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세의 젊은 나이였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5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는 데 쓰고 싶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5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열심히 살면서 주옥같은 명작을 쓸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죽음 앞에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하겠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이 단 5분뿐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만하다 허무하게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영원의 시간 속에 순간과 같고 찰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짧은 시간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지만, 과연 어떠한 삶이 후회가 없는 삶인지에 대해서는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6~8)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후회 없다고 자부한 사도 바울.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사명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후로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하는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사도 바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강조하면서 복음이 곧 새 언약임을 증거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린도후서 3:6)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사명으로 주신 새 언약은 무엇인가.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른지라 … 때가 이르시되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사도 바울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며 전했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신 ‘새 언약 유월절’이다. 새 언약 유월절이야말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귀하고 복된 소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로써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마치 사형집행 직전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매 순간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죽음의 사슬에 매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의 기쁜 소식을 속히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새 언약 유월절을 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 독서신문, 2010. 4. 19.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11
2. ‘도스토예프스키’, 예스24 작가 소개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13762
3. ‘에피소드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프리윌

댓글 1개:

  1.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새언약유월절 지키는 자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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