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봄꽃축제

봄이 되면 꽃 축제를 빼놓을 수 없죠
봄꽃축제가 곳곳에서 열리겠네요.
가까운 곳으로 봄꽃축제 다녀오며 힐링하는 것도 좋겠죠~~



출처:네이버검색

2015년 3월 24일 화요일

복의 비결인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복의 비결인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엄청난 복을 타고난 무수옹과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있다.
바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타고난 복의 비결이다.
무수옹과 같이 천복을 타고난 자가 되고 싶다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를 찾으면 된다.
진리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천국의 축복을 받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15년을 맞이했을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힘들고 걱정스러운 일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중에는 복을 타고나서 걱정을 모르는 노인이 있다. 이른바 ‘무수옹(無愁翁) 설화’다.

무수옹은 열세 자녀를 두었다. 자식들 모두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서로 모시려 하자, 무수옹은 한 달씩 돌아가면서 아들의 집에서 살고 윤달에는 딸의 집에서 지냈다. 어느 집에 가든지 행복한 웃음이 넘쳐났으니 과연 걱정이 없는 노인이었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임금은 노인을 시험해보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노인을 불러 진귀한 구슬을 주면서 “언제든지 가져오라 하면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임금에게서 귀한 구슬을 받은 노인은 기쁜 마음으로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이 구슬을 구경하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실은 임금이 일부러 그러도록 시킨 것인데, 노인의 복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진 노인은 이 같은 사실을 자식에게 털어놓았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위로하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때 며느리가 저녁을 지으려고 생선 몇 마리를 사와 배를 갈랐는데 한 생선의 뱃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다름 아닌 노인이 임금에게서 받은 구슬이었다. 노인은 구슬을 들고 궁궐로 들어가 그간 구슬에 얽힌 이야기를 임금에게 전한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무릎을 탁 치며 “하늘이 내린 복은 어쩔 수 없다”며 감탄했다.

과연 엄청난 복을 타고난 노인이다. 누가 며느리가 사온 물고기에서 구슬이 나올 줄 알았을까. 세상에는 천복을 타고난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무수옹이 꼭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무수옹만큼이나 하늘의 복을 타고난 자들이 있다.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명기 28:6~8)

이들도 대단한 복을 타고난 자들이다. 나가는 곳마다 복을 받고 들어가는 곳마다 복을 받으니 필연코 삶 자체가 축복으로 넘친다는 뜻이다. 무수옹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복이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복된 존재로 만든 비밀은 무엇일까.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3)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 28:1~6)

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에 있었다. 하나님의 규례는 인생으로 하여금 축복과 행복을 받게 하는 열쇠가 분명하다. 인생들은 규례를 지킴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고 덤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희망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교회부터 찾을 것이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진리교회도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을 찾아 무수옹보다도 더 ‘복을 타고난 주인공’이 되는 것은 어떨까.

출처:패스티브닷컴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봄에는 역시 향긋한 달래

봄에는 역시 향긋한 달래





봄에는 역시 달래죠
향긋한 향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달래는
춘곤증도 없애주고 외출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해요
식탁에 달래무침, 달래된장국,달래비빔밥~ 어떠세요~~

2015년 3월 10일 화요일

내게 5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 하나님의교회,새언약 유월절

내게 5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 하나님의교회,새언약 유월절






패스티브닷컴에 나온 내게 남은 시간 5분이라는 글이다.
만약 나에게도 5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새언약 유월절을 제일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로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에게는 5분 보다 더 소중한 인생의 삶을 주셨다.
바로 주변의 이웃들,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언약 유월절을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새언약 유월절을 함께 지켜보자고 한마디의 말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시작해보련다.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서
영생의 축복이 있는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보자고 말이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한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사형수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모임에 가담해 활동하던 중 1849년, 이른바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체포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판결을 내렸다. 그해 12월 22일 사형이 집행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세의 젊은 나이였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5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는 데 쓰고 싶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5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열심히 살면서 주옥같은 명작을 쓸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죽음 앞에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하겠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이 단 5분뿐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만하다 허무하게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영원의 시간 속에 순간과 같고 찰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짧은 시간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지만, 과연 어떠한 삶이 후회가 없는 삶인지에 대해서는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6~8)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후회 없다고 자부한 사도 바울.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사명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후로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하는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사도 바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강조하면서 복음이 곧 새 언약임을 증거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린도후서 3:6)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사명으로 주신 새 언약은 무엇인가.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른지라 … 때가 이르시되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사도 바울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며 전했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신 ‘새 언약 유월절’이다. 새 언약 유월절이야말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귀하고 복된 소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로써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마치 사형집행 직전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매 순간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죽음의 사슬에 매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의 기쁜 소식을 속히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새 언약 유월절을 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 독서신문, 2010. 4. 19.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11
2. ‘도스토예프스키’, 예스24 작가 소개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13762
3. ‘에피소드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프리윌

2015년 3월 3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인생의 성찰은 초상집에서

하나님의교회 인생의 성찰은 초상집에서




하나님의교회는 잔치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대요.

패스티브에서 퍼온글을 통해 왜 그런지 잠깐 볼까요?

제 생각에도 잔치집은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어 보여요.

그러나 초상집은 마음이 무겁고 어두울수밖에 없죠.

인생의 성찰을 할 수 있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내 인생에 더 이로울꺼 같아요.

하나님의교회도 어려움을 겪을 수록 이웃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죠.

그래서 하나님의교회가 좋아요~



하나님의교회 인생의 성찰-정답은 초상집에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교회



그 유명했던 지혜의 왕 솔로몬은 어떤 측면에서 왜 굳이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했을까요?

잔칫집의 하객 입장은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하고 즐거운 마음과 은은한 음악, 기념촬영 등 맛있는 음식과 대화로 웃음이 넘쳐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초상집의 문상객은 만사를 제치고 고인이나 상주 또는 유족들에게 위문하러 온 입장이기에 마음이 무겁고 어두울 수밖에 없죠.

그리고 이것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는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다시 한번 인생의 허무함을 실감하며 거울 보듯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기도 한다는 것.

이처럼 잔칫집에는 웃음과 기쁨, 축하가 있지만 반대로 초상집에는 슬픔과 눈물 그리고 위로와 격려가 요구되는 곳이 아니던가요.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있는데 나사로는 죽어 하나님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부자도 죽어 장사된 후에 지옥의 고통에 시달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본문 내용 중에는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아직도 육신의 낙과 세상재미에 빠져있는 다섯 명의 형제들에게 미리 알려서 제발 이곳에는 절대로 오지 않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성경말씀에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라는 말씀처럼 초상집에 가면 잔칫집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인생의 허무와 진실을 재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요.



죽음은 엄연한 것이어서 영웅도 재벌도 피해갈 수 없고, 왕도 대통령도 어떠한 권력자도 거부할 수 없으며 절세미인, 인기 배우도 늙고 병들면 예외없이 죽음을 맞이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죠.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사는 것이 나은지를 생각하게 해주죠.

이만하면, 웃고 끝나는 잔칫집보다는 인생에 대한 성찰을 심어주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훨씬 더 이로운 일이 아닐지요.

출처 : 패스티브닷컴

2015년 3월 2일 월요일

새언약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가져오신 멜기세덱이신 안상홍님

새언약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가져오신 멜기세덱이신 안상홍님





그러나 전에 유월절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현재는 유월절이 옳다고 여기 저기서 지키고 있지만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우리가 전하는 말을 도적질해 가지고 거짓 단체를 꾸민 자들이니 미구에 하나님께서 치실 것이다. 기록된 바

렘 23장 3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하였다.

이 멜기세덱의 반차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복을 빌어주는 분이 바로 멜기세덱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멜기세덱은 암행으로 나타나셔서 마귀에게 빼앗겼던 새 언약의 유월절을 다시 찾아 당신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진리를 주시고 원수들에게는 말씀으로 심판하신 후에..........

요15장 22절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는니라"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제17장 멜기세덱의 반차 중에서....​





구약에서 등장한 멜기세덱의 상징은 떡과 포도주였다.
신약에서도 멜기세덱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새언약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가져오셨다.
이 시대에도 멜기세덱으로 오신 분이 계신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교회가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새언약 유월절을 전세계 유일하게 가져오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안상홍님이 새언약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가져오신 멜기세덱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언약 유월절을 도적질하여 자신들도 유월절을 지킨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과연 그들이 온전한 유월절을 지킨다고 볼 수 있을까?
오직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곳은 멜기세덱으로 오셔서
하나님의교회를 세워주신 안상홍님뿐이다.
성령시대에 우리가 만나야 할 하나님은 멜기세덱으로 오셔서
새언약 유월절로 영생주신 안상홍님이시다.
멜기세덱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새언약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영생주시고
참 진리 교회인 하나님의교회로 인도해주신 안상홍님께 감사드린다.​